최종 : 20/09/21 01:05



[今天歷史-7월30일] 러일, 만주분할 합의, 馬王堆

중국 지하 핵실험 중단 선언, 호네커 전 동독 서기장 살인죄로재판,비스마르크 사망, 국제 적십자회 세균전 금지 결의, 역도산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 창설, 백건우-윤정희 부부 납북 미수, 미 상원 한국 전후 복구 비용 2억 달러 승인, 에밀리 브론테 출생, 메이지 사망

1907년 7월30일 러시아와 일본이 페테르스부르크(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에서‘러일협정’을 체결했다.

러일 1차협약으로 불리는 협정은 공개 부분과 비공개 밀약으로 나누어져 있다. 밀약 부분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1) 만주(동북 3성)를 남북으로 양분하여 북부는 러시아 세력범위로 하고 남부는 일본의 세력범위로 한다.

(2) 러시아는 일본과 조선의 현재 정치관계를 인정하고 이 관계가 계속 발전하는 것을 저지하지 않는다.

(3) 일본은 외몽골에 대한 러시아의특수이익을 승인하며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부속규정에서는 만주지역에서의 러시아와 일본의 경계를 구체적으로 설정하였다.

러일전쟁에 앞서 한반도 분할을 제의한 바 있던 러시아는 러일 전쟁 패배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독점적 지배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일본과 만주 분할을 성사시킨 것이다.

러시아와 일본은 2차, 3차, 4차 밀약을 잇달아 체결하면서 중국에서 제국주의적 이익 공유와 공존을 모색했으나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으로 제정이 붕괴하면서 불안한 공존 틀은 무너졌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 지역의 독점 지배권을 시도하였고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감행, 전 중국 지배를 꾀하였다.

[今天歷史-7월4일] 러일 2차밀약

[今天歷史-7월8일] 제3차 러일 밀약

1972년 = 중국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 인근에서 전한(前漢)시대 초기의 묘가 발굴되었다. 이 분묘는 언제 조성된지 모르는 채 마왕퇴(馬王堆)로 불렀다.

발굴 결과 전한 초기 황제에 의해 제후에 봉해져 분봉 제후국인 장사국의 승상으로 파견된 인물의 부인 묘소임이 확인됐다.

무덤에서 묘지의 주인공인 여인의 시신이 매장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발견되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된 '마왕퇴의 귀부인(원제 : 西漢亡魂』(일빛, 2001)'에서는 시신 발견 당시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 열여덟 번째 겹은 흰 비단이고, 열아홉 번째 겹은 얇은 비단 홑옷이었다. 스무 번째 겹은 ‘신기수’에 솜을 넣은 비단 두루마기(信期茶黃羅綺綿袍)였다. 이렇게 모든 견직물을 완전히 떼어내자 여자 시신이 드러났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 여인은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속옷은 입혀있지 않았다.

이 여자의 시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나타나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여자 시신의 외형은 완전했고, 얼굴은 살아 있는 듯했으며, 온 몸은 부드럽고 윤이 났고, 피부는 엷은 황색을 띠고 있어서 마치 방금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쭉 뻗은 두 손은 각기 수놓은 작은 향주머니를 쥐고 있었는데, 안에는 향초가 가득 있었다.

고고학자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와 가슴과 팔 부위를 눌렀다 놓자, 凹자형으로 쑥 들어갔던 살과 피부가 금방 다시 탄력 있게 원래 상태로 회복되었다. 또 팔과 다리를 움직이자 관절이 모두 자유롭게 굽어지고 펴졌다.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속눈썹이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했고 , 왼쪽 귀의 얇은 고막이 완전했으며, 심지어 발가락의 지문과 피부의 모공 역시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분명했다.

여자의 시신의 키는 1.54m, 무게는 34.3kg이었으며, 발바닥의 길이는 25cm에 달해서 거의 현대 여성의 발과 같은 크기였다. 한나라 때의 여성은 확실히 전족(纏足) 습속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무덤 주변에서 또 다른 무덤이 발굴되면서 무덤의 건립 연대와 주인공이 밝혀지게 됐다.

온전한 시신으로 발굴된 이 여인은 전한 혜제(惠帝) 2년 대후(侯)로 봉해져 장사국(長沙國)의 승상(丞相)으로 파견된 이창(利蒼)의 부인으로 추정되었다. 묘의 건립연대는 BC 175~145년으로 추론되었다.

장사국은 한고조 유방(劉邦)이 항우(項羽)를 패퇴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뒤 자신을 도왔던 주요 공신들에게 나누어 준 8개 왕국의 하나이다. 장사국의 왕으로 봉해진 이는 오예(吳芮)였으며 중앙에서는 이들 제후국의 반란을 우려, 승상을 파견했다.

마왕퇴의 세 무덤에서 모두 3000여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이중에는 칠기 500점, 병기 38점, 죽간과 목간 922점, 견직품 100여 점, 목용 266점, 죽기 100여 점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4점의 백화를 비롯해 가장 나중에 발굴된 3호 묘에서 출토된 10여만 자 20여종의 백서(帛書)는 그 내용이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을 포괄하며 실전된 것도 적지 않았다.

한 마디로 표현해 마왕퇴는 2000여 년 전의 중국 사회의 타임캡슐이었다.

1974년 마왕퇴 무덤 전시관이 세워져 1998년까지 외국인 17만 명을 포함 800여 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1996년 = 중국은 제네바에서 전면핵실험금지조약에 관한 회담이 개막되기 수 시간 전에 지하핵실험을 중단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시한은 정하지 않았다.

세계사 속 오늘

전 동독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가 베를린에서 49건의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다(1992).

영국에서 광산법이 제정되어 소년의 지하노동이 금지됐고(1900) 러시아의 사회민주노동당(소련 공산당의 전신)이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로 갈라졌다(1903).

미국이 파나마에서 주둔 100년 만에 철수했다(1999).

국제적십자총회가 세균전 금지협약을 가결했고(1952), 헬싱키에서 유럽안보협력회의가 열렸다(1975).

염가본 페이퍼백 문고책인 `펭귄북스', 영국서 발매가 시작됐다(1935).

우리나라 역사 속 오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한국구호 결의안을 채택했고(1950), 미국 상원이 한국의 전후복구를 위한 비용 2억 달러 사용을 승인했다(1953).

서울 외곽지역에 최초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지정됐다(1971)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그의 부인 영화배우 윤정희 부부 납북 미수사건이 발생했다(1977).

한국 출신 일본 프로레슬러 역도산(力道山)이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를 창설했다(1953).

한국 최초의 한자전(漢子典 )이 발간되었다(1908).<

7월 30일은 '폭풍의 언덕'을 쓴 영국 여류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1818-1848)와 미국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1947- )가 태어난 날이다.

에밀리 브론테는 마르크스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던 해에 죽었다. 그의 언니가 '제인 에어'를 쓴 샬롯 브론테이다.

이날은 독일 통일을 이룩한 독일 철혈재상 오토 비스마르크(1815-1898)와 한국병탄 당시 일본 국왕(천황)이었던 메이지(明治. 1852-1912)의 기일이다.

또한 일본 저명한 소설가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던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1886-1965)도 이날 타계했다.

2020/07/3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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