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0/09/21 01:05



[今歷단상-9월14일]鄧 사냥개 삶기 방법 우선 미지근한 물에 처넣기

덩샤오핑의 88세가 되던 1992년은 건곤일척(乾坤一擲)으로 시작하여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거쳐 토사구팽(兎死狗烹)으로 마무리되었다.

1월 남순강화를 시작 소련 체제가 붕괴된 직후 공산중국을 구하기 위한 사회주의 시장경제 구축의 첫 발을 디뎠다 단기필마로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닌 제3길의 도정이었다.

그의 뒤를 하나씩 둘씩 따랐고 봄이 찾아올 무렵 13억의 인구가 따르게 되었다.

8월에는 한국과 수교하여 중국에서 떨어져 나가려는, 마오쩌둥과 장제스가 함께 오랑캐로 여겼을 리덩후이에 회심의 카운터 블로를 메겨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다.

현애늑마(懸崖勒馬)에 성공한 것이다. 낭떠러지 끝에 다다른 말의 고삐를 잡아끌어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11월에는 1989년 6월 천안문 유혈진압의 최대 공로자 양상쿤과 양바이빙 형제의 이른 바 양가장 세력의 군권을 박탈, 덩 후계체제 의 위험한 걸림돌을 치워 버렸다.

체제 붕괴 위험을 피할 활로를 찾아내고 대만 문제도 일단 파국 진행을 막았으니 '날랜 토끼'는 잡혔다.

'주인도 물어 죽일 날카로운 송곳니로 피맛을 보았으나 갑자기 한가해진 사냥개'를 '삶는 일'이 남았다.

양가장의 좌장 양상쿤 국가주석 겸 군사위 부주석은 자신도 덩샤오핑처럼 물러날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촌아우 양바이빙이 자신이 맡았던 군사위 부주석과 실무를 총괄하는 비서장을 담당하여 군권을 이어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양상쿤은 덩샤오핑 사후 '권력 창출 총구'를 거머쥐어 '누가 총서기이든 자신이 덩이 누리던 '태상황'의 지위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품었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14대 기간 양바이빙에 다음과 같은 4자지침을 내렸다.

당사자와 그의 형 양상쿤뿐만 아니라 모두의 의표를 찔렀다. 중난하이의 모두와 차이나워처 전체를 .

기군종정(棄軍從政).

군무에서 떠나 정치에 종사하라는 이야기였다.

이에 따라 양바이빙은 군복을 벗고 정치국 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맡은 일은 선전 부문이었다. 14대에서 린뱌오 이후 처음으로 류화칭이 군인으로서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상황에서 말이다.

양가장 형제는 자신들이 가마솥 안에 들여앉혀진 사냥개임을 깨달았으나 물은 전혀 뜨겁지 않고 아주 따뜻했다.

마오쩌둥은 1959년 뤼산회의에서 펑더화이의 도전을 물리칠 때 '징강산으로 돌아가겠다'고 동료들을 협박했다. 나냐 대혼란이냐는 식의 으름장이었다.

1966년에는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말로 류사오치에 대한 정조준공격을 아주 투박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명령했다.

1971년에는 소련으로 도망치는 린뱌오 가족이 탑승한 군용기를 쏘아 버렸다. 울타리 밖으로 내빼는 송곳니와 발톱이 모두 빠진 개를 놓아주지 않고 확인 사살한 것이었다.

마오가 펄펄 끓는 가마솥에 더 이상 쓸모가 없고 자신을 물을까 무섭기 만한 '사냥개'를 무자비하게 집어넣는 방식이라면 덩샤오핑은 아주 따뜻하고 안온한 물에 사뿐히 내려놓는 셈이다.

양상쿤은 덩샤오핑이 죽은 한해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지만 결코 가마솥에서 뛰쳐나오지 못했다. 양바이빙도 존재감이 없는 정치국 위원을 지낸 뒤 '사라져 버렸다'.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20/09/14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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