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0/11/24 07:02



[今歷단상-9월15일] 맥아더와 펑더화이의 정치적 패배

한국전은 우리나라에서 벌어졌지만 이 전쟁의 두 주역 장군을 꼽으라면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와 공산 중국의 펑더화이다.

둘 다 상대방의 허점을 기습적으로 타격하여 위급하던 전세를 단번에 반전시켰다.

맥아더는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펑더화이는 장진호 전투를 통해 상대방을 확실하게 패주시켰다.

맥아더는 낙동강 전선에 집중됐던 북한군을 산사태 무너지듯 후퇴하게 만들었다.

펑더화이도 장진호에서 한반도 가장 북쪽까지 전진했던 미 해병을 포위하여 궁지로 몰아넣고 결국에는 퇴로를 뚫고 참담하게 후퇴하게 만들었다.

'뒤로 돌격'한 이들 미 해병 패잔병들을 포함 흥남으로 쫓겨난 미군과 국군 등은 모든 군사 장비를 깡그리 파괴하고 10여만명의 피난민과 함께 선박 편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장수들을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눈다. 용장, 지장 그리고 덕장이다. 이 세 부류를 두고 '용장은 지장을 따르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개별적인 전투와는 별개로 전쟁의 최종 승리를 거두는 장수로는 덕장을 꼽는다.

'삼국연의'의 유비, 관우와 장비를 이 기준으로 나누면 전투에서 볼만한 승리한 기록이 찾아 볼 수 없는 유비가 덕장이고 관우가 지장에 해당된다. 장비는 두말할 나위 없이 용장이다.

이들 세 분류 외에 '복장(福將)'을 추가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흔히 조자룡으로 부르는 조운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유관장 세 사람이 모두 패전 또는 암살과 패전에 따른 홧병으로 제 명수를 채우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야 했으나 조자룡은 자손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세 사람의 뒤를 따랐다.

그래서 '으뜸 장수'는 덕장이지만 '가장 행복한 장수'는 복장이라는 말이 나왔다.

펑더화이는 장비를 떠오르게 하는 용장이었다. 인민해방군 내에서 전승 기록이나 전과로 따져 볼 때 펑더화이는 린뱌오에 못 미친다. 린뱌오가 지장이라면 펑더화이는 용장인 것이다.

하지만 장비가 단기로 장판교 앞에 서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쳤듯 펑더화이는 단순한 용맹스러운 인물이 아니라 지지 않는 방법을 아는 장수였다.

펑더화이는 중일전쟁 시 백단대전에서 일본군에 결국 패퇴했지만 대병력을 묶어두는 전술적 효과를 충분히 거두었다.

또 그는 1951년 5월 말 한국전 현리전투에서 군단급 국군 병력을 괴멸시켜 한국전이 장기전으로 빠져들게 했다.

펑더화이를 장비에 비유할 수 있다면 맥아더는 시저(카이사르)에 비견할 수 있다.

시저가 로마 공화정의 문민통제 원칙을 무시하고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과 함께 루비콘강을 건넌 것처럼 맥아더는 워싱턴의 주저와 우려를 일축하고 인천 상륙작전을 강력하게 주장, 결행하여 성공시켰다.

그리고 1.4 후퇴 직후부터 다시 전세를 만회하여 38도선까지 치고 올라간 뒤 워싱턴의 전략과는 정반대로 만주 폭격론을 거세게 주장했다. 맥아더에게 압록강은 '또 다른 루비콘 강'이었다.

하지만 트루먼 대통령의 해임 발표로 맥아더는 한순간에 '사라지는 노병'이 되었다.

시저가 원로원에서 민첩하지 못한 노병처럼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 젊은 부르터서의 최후 1격에 쓰러져 절명한 것처럼 말이다.

갈리아 원정을 성공시켰으며 이집트를 정복했고 로마군 내 최대 라이벌 폼페이우스를 전쟁터에서 자웅을 겨뤄 패사시킨 백전백승의 불세출의 뛰어난 장수 시저는 정치모략에 말려들어 무방비 상태로 이리저리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카스카부터 부르터스에 이르는 스물 네 차례의 단도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정치에 진 것이다.

펑더화이는 백전백승의 장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밀릴 때에도 우직하게 버텨 이기지는 못했으나 패배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전에서도 세계 최강의 군대와 맞붙어 가공할 인적 소모전을 펼쳐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 세계에서 펑더화이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뤼산회의에서 마오쩌둥에게 펑의 충성심은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마오는 정치적 계산법에 따라 펑을 가혹하고 잔인하게 숙청했다.

펑은 자신의 충성심을 알아주리라는 믿음에 자신을 비정하게 내친 마오에게 여러 차례 복권을 청원했으나 마오의 정치적 계산법은 그가 비참하게 죽을 때까지도 그리고 마오 자신이 생을 마칠 때까지도 바뀌지 않았다.

불세출의 장수를 꺾기 위해 불세출의 정치가가 될 필요는 없다. 단지 정치적으로 유능한 정치가이면 충분하다.

트루먼은 불세출의 정치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불세출의 군인 맥아더를 한 방에 무너뜨렸다.

왜 '정치 경제,사회'로 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정치를 맨 앞에 내세우는지 알 것 같다.

정치가 앞서기 때문이다.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20/09/15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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