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1/03/05 23:31



[今天歷史-2월22일] 제3세계론, 달라이라마 14세 즉위

1974년 2월 22일 마오쩌둥(毛澤東)이 잠비아의 카운다 대통령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제3세계론’을 제기했다.

마오는 “미국과 소련은 제1세계이고 일본, 유럽, 캐나다 등은 제2세계이며 우리들은 제3세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 모두가 제3세계이고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모두 제3세계이며 라틴 아메리카 국가 역시 모두 제3세계이다”라고 밝혔다.

이해 4월 유엔총회 제60차 특별회의에 중국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한 덩샤오핑(鄧小平)은 10일에 있은 연설(사진)에서 마오의 제3세계론에 바탕한 중국의 대외정책을 밝혔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소련과 미국은 패권국가인 제1세계로 상호간에 패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와 인민은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그리고 반패권주의의 주력군이다. 전 세계 인구 5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은 제3세계의 흔들리지 않는 역량이다.

이들 두 세계 사이에 영국, 프랑스, 서독, 일본 등 제2세계가 있으며 이들은 양면성을 갖고 있지만 반패권투쟁에서 제3세계와 연합할 수 있는 역량이다.'


마오의 제3세계론은 당시 중국 대외정책의 기본 인식 틀이었다.
2002년 제4세대 지도부가 등장한 이후 중국은 국가주석이 아프리카를 순방하는 등 아프리카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목표는 마오가 말하고 덩이 계승한 제3세계론에 입각한 행보가 아니다. 안정적 자원 확보를 1차적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과거 아프리카에 대해 1세계와 2세계가 취한 태도를 뒤쫓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아프리카 접근이 유럽이 불안해 할 정도로 괄목할 성과를 거두는 데는 제3세계론에 입각한 마오의 외교적 투자가 선행되었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이는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1, 2세계가 취했던 수탈적 태도를 제약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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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 달라이라마 14세가 티베트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즉위 당시 그의 나이는 5세였다.

달라이라마 14세의 본명은 톈진가 쵸(Tenzin Gyatso)로 1935년 5월 5일(7월 6일이라는 기록도 있다) 동북 티베트의 탁처 지방에서 출생했다.

달라이라마 14세는 1936년 6월2일 그가 태어나기 2년 전에 달라이 라마 13세의 환생으로 인정되어 라싸에 모셔지고 이날 달라이라마 14세로 즉위한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즉위할 당시 티베트는 사실상 독립을 영위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중국의 간접적 통제 아래 놓여 있던 티베트는 19세기 후반기 인도를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던 영국이 러시아의 남진(南進)을 견제하기 위해 티베트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영국과 청나라의 군사침략을 받기도 했던 티베트는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사실상의' 독립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달라이라마 14세가 즉위한 지 9년 뒤인 1949년 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석권하게 되면서 상황은 일변했다.

1950년 공산 중국은 티베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군대를 진입시켰고 1951년에는 티베트를 사실상 통치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1959년 3월 이 같은 중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유혈 독립항쟁이 발발했으나 실패하고 달라이라마 14세는 인도로 망명하였고 그 곳에 망명정부를 수립했다, 이때 달라이라마 14세의 나이는 24세였다.

중국은 1965년 티베트를 '시짱(西藏)' 이라는 자치구로 만들었다.

달라이라마 14세는 인도에 망명한 뒤 비폭력주의에 의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티베트와 티베트불교, 즉 라마교를 전 세계에 알렸다.

달라이라마 14세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일관되게 비폭력주의를 주창해온 점이 선정 이유였다.

이해 3월 티베트에서는 유혈 반중폭동이 일어났으며 6월에는 천안문 유혈진압이 이루어져 중국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이 그가 평화상을 수상한 배경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해 3월의 티베트 반중 폭동을 진압한 이는 후에 총서기에 올라 재4세대의 최고지도자가 되는 후진타오(胡錦濤)였다.

당시 시짱 자치구 서기였던 후진타오는 헬멧을 쓰고 현장에 직접 나가 사태를 신속하게 장악했는데 이는 그가 제4세대 최고지도자가 되는 한 가지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에서 성속양권(聖俗兩權)을 쥐고 있었던, 티베트불교(라마교) 최대 종파인 겔루크파(黃帽派) 종정(宗正)의 칭호이다.

'달라이'는 티베트어의 '갸초'에 상당하는 몽골어로 '대해(大海)'를 뜻하며, '라마'는 티베트어로 '무상(無上)의 스승', '상인(上人)'을 뜻하여, 합쳐서 '대해와 같이 넓고 큰 덕의 소유자인 고승'이 된다.

이 칭호는 주로 중국·몽골·인도 등 외지에서 사용되고, 티베트인들 스스로는 '걀와린포체(보석과 같은 勝者)' 또는 '이신노르부(如意寶珠)' 등으로 부르며 직접 '달라이라마'로 부르는 것을 피한다.

2021/02/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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