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1/03/05 23:31



[今歷단상-2월22일]‘후후후, 체체체, 마오마오마오’

'후후후, 체체체, 마오마오마오'

프랑스 68혁명 때 시위 대학생들이 외쳤던 구호였다.

'후후후'의 후는 후즈밍 당시 북베트남 (월맹) 지도자 호찌민의 영문 표기 성을 말한다. 호찌민의 한자 표기 호지명(胡志明)을 중국어로 읽은 것을 영어식으로 표기하여 그렇게 불렸다.

체체체'의 체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공산혁명의 양 기둥인 지도자의 별명 체 게바라의 첫 글자다.

'마오마오마오'의 마오는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68혁명을 일으킨 프랑스 대학생들에 강한 자극을 주고 영향을 끼친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마오쩌둥의 성이다

이들 세 사람은 프랑스 드골 체제를 밑뿌리에서 뒤흔든 68혁명의 아이콘이었다.

프랑스 시위 학생은 이들 3인을 다음과 같이 인식했다.

마오는 반식민지 상태에 놓였던 ‘아시아의 병자’ 중국을 세계 최강 대국 미국과 맞장을 떠서 한반도 북부를 방파제로 만들어 불과 수십 년 전에 '개와 동급으로 취급한' 중국인을 괄목상대하게 만든 인물로 간주했다.

체 게바라는 미국의 뒤뜰에서 효자 노릇 하던 종속국가 쿠바를 반미국가로 뒤집어 놓은 혁명 지도자였다. 쿠바는 '두 고래'의 등을 터지게 만들 뻔한 '무서운 새우'가 되었다.

후즈밍, 즉 호찌민은 프랑스의 불량 식민자산 베트남을 인수한 미국을 정글 늪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들 세 사람 중 향도이자 멘토는 마오였다.

체 게바라의 쿠바 공산혁명은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다는 마오쩌둥의 게릴라 교리를 채용하여 성공하였다.

후즈밍은 마오가 미국과 맞장을 뜰 수 있는 기반이 된 중국 공산혁명 성공의 바탕이 된 게릴라 전술을 베트남 버전으로 변용, 적용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50만 대군을 투입하고도 이길 수없는 전쟁으로 묵시적 인식을 하게 만들었다.

마오의 제3세계론은 자신의 성공과 후발 추종자의 청출어람을 참고하여 발전시킨 세계전략 이론이다.

마오는 중국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후진국들은 제3세계라고 하였는데 이는 '세계의 농촌'에 해당한다.

유럽과 아시아의 일본을 제2세계로 분류하였는데 이는 중국 공산혁명 과정에서 충성스런 동 반자 역할을 한 지식인들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담았다.
제1세계의 미국과 소련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세계 전략상 타도하여 점령하여야 할 도시를 지칭한다.

마오의 제3세계론이 나온지 45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상당한 거리와 질적 수준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과 함께 G2를 구성하고 있다.

소련이 해체되어 승계한 러시아는 핵무력 면에서는 여전히 G2이지만 GDP 면에서는 12위로 우리나라보다 한 단계 아래다.

45년 전 마오가 '중국은 제3세계다'라고 하였을 때 거의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와 적지 않은 아시아 국가들은 크게 공감했다.

그러나 지금 아프리카 상당수는 내심 '검은 머리 노란 얼굴의 백인'으로 간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시아 국가 대다수는 '차이나 공포'의 가위눌림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의 다윗은 이제 골리앗으로 변해있다. <스위프트-버크왈드>

2021/02/2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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