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1/04/15 23:13



[今歷단상-3월25일] 4인방의 刻舟求劍

1965년 11월10일 4인방의 야오원위안은 그들이 주자파로 규정한 세력을 겨냥한 불화살을 날렸다.

불화살은 거센 역풍에 흔적 없이 꺼질 위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결국 반년 뒤인 다음해인 1966년 5월 '초원을 불태우는' 문화대혁명의 불길을 지피는데 성공했다.

문혁 세력은 다양했고 내부 투쟁도 가열하여 각 세력 간 부침이 심했으나 4인방은 10년 동안 줄곧 건재했다.

1976년 3월25일 이들 4인방은 또 다시 '주자파 타도'의 불화살을 쏘았다. 불과 열흘이 못되어 새로운 불길이 타오를 기세였다.

그러나 6개월 열흘 뒤 4인방은 '되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당했다.

1976년 10월6일 베이징 정변으로 체포된 이들은 재판 뒤 연금 중 자살, 옥중 병사와 망각 속의 사망 등으로 역사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4인방의 정치적 유산은 깡끄리 청소됐고 잊혀졌으며 오명만이 남았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들은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어감에도 불구하고 10년 전의 선동과 선전 방식을 그대로 되풀이 하다가 간단하게 지워졌다.

마오쩌둥이 사라진 가운데 '그들만의 독선적' 마오 노선을 '독단적으로' 끌고 가려한 착각과 무모함의 결과다.

탈권 이후 끊임없이 추구해온 뺄셈의 정치로 인해 자신들이 소수파가 되었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축소 지향'을 넘어 '축소 극대화'로 맹진했다. 마오마저 '문혁 우파'로 만들 지경이었다.

결국 내연하던 불만은 마오의 사망을 계기로 문혁세력 다수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호랑이가 사라진 뒤 호랑이등 위에서 호가호위하던 그들은 각각 단 한 사람도 감당 못할 약골이거나 비대한 또는 늙어 빠진 3명의 남자와 한 명의 나이든 여자에 불과함을 확인해야 했다.

1976 3월의 4인방은 그들이 탄 배가 10년 동안 강물을 따라 흘러왔음을 잊고 10년 전에 뱃전에 표기해 둔 표식에 따라 '칼'을 찾겠다며 물 속에 뛰어들어간 꼴이었다.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21/03/25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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