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1/04/15 23:13



[今歷단상-4월6일] 권력유지 달인 마지막 謨事, 成事在天

권력 유지는 저울대의 중심 맞추기와 같다. 정치 세계나 경제계에서나 국제관계에서나 모두 이 원칙에 수렴된다.

소련 초대이자 마지막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소련 체제마저 붕괴한 것이라든가 19세기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가 구축한 유럽 보수반동 체제가 그 자신의 망명과 함께 붕괴된 것도 세력 관계 권력 저울대의 좌우 균형이 되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기울어지는 것을 방치하다가는 한쪽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다른 한쪽은 바닥을 향해 내려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다.

제때를 높치면 내려가던 한쪽은 바닥을 치게 된다. 그러면 '중심'은 없다. 권력 공백 또는 아노미 단계로 들어간다.

다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시행 착오를 거쳐야 한다. 좌편향이든 우편향이든 새로 설정한 중심이 지속 가능해질 때까지 저울은 요동친다.

문화대혁명은 자신이 중심이자 균형추라여야 한다는 마오쩌둥이 볼 때 위험한 기울기의 우편향이라고 판단한 류사오치를 우두머리로 한 당권파를 선제적으로 쓸어버린 '천하 대란'이다.

요동하던 중심을 다시 자신에 맞춰 새로 설정한 뒤 이를 지속하도록 하기위해서는 '좌(左)의 힘을 빼고 '우(右)'에 힘을 실어주어야 했다.

마오가 문화대혁명의 질풍노도를 통해 탈권에 성공한 후 하방 캠페인을 통해 녜위안쯔, 콰이다푸와 한아이징 등 문혁 돌격대를 숙청한 것과 4인방의 상하이 인민공사 추진을 무산시킨 것이 '좌(左) 무거운 돌' 거두기와 힘빼기라면 천짜이다오와 덩샤오핑은 '우(右) 돌 보존과 힘 얹어주기'의 아이콘이다

새 '마오 중심'이 안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좌우 모두 자숙해야 했다.

오른편 쪽의 덩샤오핑과 천짜이다오는 좌편향 중심을 흔드는 어떠한 내색도 행동도 벌이지 않았다.

덩이 1974년 4월 유엔으로 가서 마오의 제3세계론을 복창한 것은 그 스스로도 동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호 주자파'라는 4인방이 낙인한 '주홍글씨 명찰'을 떼기 위해서였다.

천짜이다오는 기세등등하던 문혁 세력에 타격을 가한 1967년 백만웅사 사건으로 군사령관직에서 해임된 뒤 한 회의에서 마오가 좌중을 둘러보며 "천짜이다오는 어디 있는가"라고 말한 의도를 이심전심으로 알아듣고 이후 침묵하고 행동도 자제했다.

조급, 무모한 4인방과 달리 덩샤오핑과 천짜이다오 등 '좌편향 중심 체제 하의 ''우'는 방어적 자세로 권력 저울대가 요동하지만 기울어지도록 하지 않도록 하면서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덩샤오핑은 1973년 공식 복권 이후 '2호 주자파'가 아닌 '마오맨'으로 새 단장한 '덩샤오핑 마쇼르카'는 마오가 죽을 때까지' 벗겨도 벗겨도 마오맨'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오가 죽은 2년 뒤 '덩샤오핑 마쇼르카'는 더 이상 '마오맨'의 모습이 아닌 '0호 주자파'의 모습을드러냈다.

'시황제' 시진핑과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그리고 '최고 존엄' 김정은 의 권력도 외견상으로는 여전히 안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같은 안정은 세력 균형에 의한 지속성의 안정이 아니다.

다른 성격의 균형이다. '공포의 균형이다.

복합 공포 속에 시진핑에게서는 '망신의 공포'가, 푸틴에게서는 '대안 부재의 공포'가 그리고 김정은에게서는 '기관포 공포'가 도드라진다.

세력 균형에서는 수면하 '오리의 물갈퀴질'이 바삐 진행되어야 한다. '공포의 균형'에는 그런 수고가 덜 필요하다. 하지만 한번에 훅 갈수도 있고 한번 가면 불가역적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21/04/0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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