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1/04/15 23:13



[今歷단상-4월7일] 似而非와 뱁새 황새 코스프레

지난 2019년 2월27일~28일의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전까지만 해도 상어가 고래를 갖고 놀고 뱁새가 황새를 끌고 가는 세계 전략적 기적 같은 일이 이루어지는 듯 보였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처음으로 패배시킨 베트남의 수도가 회담 장소 이었으니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데자뷰를 갖게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회담 테이블 박차고 나가기'라는 어느 누구도 생각 못한 이벤트 하나로 상황은 완전 뒤집어졌다.

북한 김정은 집단은 2018년 2월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핑퐁외교’의 재판으로 기대했다.

임신 상태의 '최고 존엄' 동복여동생 김여정을 남으로 보내 선동적인 '억지 미소외교를 펼쳐 종북 세력과 기레기 군단의 마조히즘적 환호작약하는 추임새의 호응 아래 초대박을 가져왔다.

그들로서는 '1971년 어게인 한반도 버전'의 출시를 기대하게 되었다. '심봤다'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첫술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백두혈통'의 4명 중 1인이자 현재로서는 '존엄' 유고시 승계 1순위를 남행하게 하는 최고 카드를 던지고서도 미국의 반응은 싸늘했던 것이다.

김정은은 동복형 김정철이 있으나 마오쩌둥의 둘째 아들 마오안칭처럼 정신상의 문제가 있어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으며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 사이에 어린 자녀들만 있다고 한다.

김씨 붉은 조선왕조의 창업자 김일성의 직계자손은 '백두혈통' 외에도 더 있다. 김정일의 장남이자 따라서 김일성의 장손인 김정남은 김정은의 최대 위협적 존재였는데 그는 2017년 2월14일 김정은의 '스탠딩 오더'에 따라 암살당했다.

김정은숙부 김평일 등의 왕통 계승은 김정은 호위무사 및 섭정 세력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 이들 '곁가지'는 김씨 왕조의 왕통 승계에서 배제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자 다시 남쪽 문재인 정부의 특사를 초청, 남북 정상회담에 합의하고 미국 트럼프 정부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전향적 메시지를 전하였는데 트럼프로부터 정상회답을 즉각 하자는 답변이 날아왔다.

이는 1971년 미중 화해 당시 미국 탁구 대표단 초청과 성사에 이은 실무진 접촉, 대통령 특사 파견과 비밀 회담, 대통령의 중국 방문 발표,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에 이은 양국 정상 간의 대면 회담 실현 등으로 이어진 10개월의 프로세스를 2월여로 압축한 것이다.

트럼프는 평양 측에 잇달아 숨돌일 새 없는 수를 밀어 붙였다. 트럼프는 비둘기파 국무장관과 신중한 매파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을 각각 매파 중 매파와 초울트라 매파로 교체하였다.

이러자 트럼프 뱃속에 '칼'이 들어있을 가능성에 평양 측은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치명적 가시가 달린 올리브 가지'였다.
김정은의 북한은 우선 김정은이 북한 노동당 조직 지도부 의 '가게무샤'가 아닌가 하는 시진핑 등 중국 최고지도부의 싸늘한 눈길을 풀기 위해 실질적 권력 실세 1,2,3위가 모두 함께 베이징을 방문했다.

'명실상부한 북한 '뇌수'의 베이징 이동을 위해 죽은 김정일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 방탕 '봉인 열차'가 동원 되어야 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보험 들기다.

이는 북한으로서는 '1971년 미국이 'One China yes,not now'와 같은 절충책 '북한 핵폐기 그러나 당장은 아니다'만 합의되면 대성공이고 합의가 불발이더라도 미국의 군사공격을 중국이 저지시켜 주면 성공이라고 생각하였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북미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만나 손을 잡았다.

북한은 최대 적국이자 북한을 초토화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바로 당사자와 악수를 한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1971년 '죽의 장막'을 열었듯이 '은둔의 왕국'을 열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우선적으로는 미국의 한 도시를 파괴할 수도 있는 북한 핵 능력의 완성을 향한 카운트다운 정지였고 핵 확산의 선두에선 북한의 유턴 첫 발을 기대했다.

그러나 지난 1년간을 되짚어 보면 1971년과 2018년은 이처럼 같은 듯하나 전혀 다르다.

1971년 미국은 베트남전 수렁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것을 중국은 소련의 군사 공격 위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상호 절실한 필요가 있었다. 양측은 디테일에서는 평행선을 달렸으나 큰그림에서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렇지만 2018년 미국의 큰그림 상 요구는 북한 핵의 즉각적인 CVID실현이고 북한의 카운터 요구는 핵보유 인정과 대북 옥죄기의 풀기다.

문제는 이런 양쪽 요구가 1971년과는 달리 교환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미국 조건을 들어주면 이는 김정은 체제의 붕괴와 직결된다. 그리고 핵 없는 북한은 발가벗고 북극 빙산에 오르는 격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현재 설정한 프레임에서 후퇴하는 것은 클린턴 이래 전 행정부와 차별화를 잃는 것으로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것이 된다.

또한 1971년 경우 일본, 유럽 등의 중국 러시가 이루어졌던 것처럼 중국은 잠재적 시장으로서 매력이 무궁했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과 비교할 바 없는 시장이고 여전히 스탈린주의적 체제를 견지하여 투자 보호와 관련하여 '양치기 소년'이 된지 오래다.

1971년 게임판에서 세계 전략적 차원의 큰 패만 있을 뿐이고 거래 방식도 아주 단출했다.

현재는 중미 무역전쟁과 중국의 해양 팽창이 복잡한 세계 전략적 고려 사안이 결부되어 있어 게임을 아주 복잡하게 한다.

큰판에서 약소국은 손해 보기 마련이다.

1971년 미국과 중국은 이익을 서로 교환할 수 있었고 손해를 본 쪽은 남베트남과 대만이었다.

현재 한반도 남북한은 결코 고래는 아니다. 고래들만이 서로 이익과 손해의 총량을 놓고 포지티브섬 거래할 수 있는 처지다.

따라서 2019년 2월 말 하노이 결렬은 2018년이 1971년의 '사이비(似而非)'임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뱁새'의 '황새' 코스프레였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21/04/0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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