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1/04/15 23:13



[今天歷史-4월7일] 핑퐁외교, 鄧 3차실각

중국 美휴즈사 제작 인공위성 발사, 리쭝런 일본군 3만명 섬멸, IOC 중국 회원 가입 승인, 나치 독일 유대인 사회주의자 등 공직 추방, 미군 일본 최대 전함 야마토 격침, 영국 포클랜드 인근 200해리 해역 전쟁구역 선포

1971년 4월7일 중국이 미국 탁구팀을 초청했다. 3일 뒤인 10일 미국 탁구팀이 중국 방문길에 오름으로써 미중화해의 단초가 된 '핑퐁외교'가 전개됐다.

핑퐁외교는 이후 상호 적대적인 국가 간에 관계 개선을 위한 선행 단계로서 체육 교류를 활용하는 새로운 외교 패턴의 전형이 되었다.

중국은 2006년 핑퐁외교 35주년을 앞두고 미국 탁구단을 초청했는데 이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양국 간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또한 미국 탁구단 초청과 비슷한 시기 일본 탁구단을 초청한 것 역시 악화된 중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의 목적이 있었다. ‘핑퐁외교’의 리바이벌이었다.

[[今天歷史-4월10일]수양제, 중소우호조약 실효, 핑퐁외교

핑퐁외교 35주년...미 기념 대표단 방중 2006/03/26 20:57

1990년 = 베이징(北京) 시간으로 21시30분 중국이 자체 제작한 운반 로켓 ‘장정(長征) 3호’에 실린 ‘아시아(亞洲)1호’ 인공위성이 시창(西昌) 위성발사 중심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인공위성은 미국 휴즈사가 제작한 것으로 중국은 처음으로 외국이 제작한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앞서 중국은 1970년부터 26개의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쏘아 올렸다. 한편‘장정 3호’ 로켓은 1984년 4월8일 통신위성을 처음 발사한 이래 6번째의 인공위성 발사를 성공시킨 것이다.

이날 발사 현장에는 한족 외에 이족(彛族), 티베트족(藏族) 등 소수민족과 17개국 및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온 200여명의 참관단이 발사 순간을 지켜보았다.

[今天歷史-3월26일] 이리듐 프로젝트 인공위성 발사

1976년 = 중국공산당 정치국, 화궈펑(華國鋒)을 정식으로 총리에 임명하는 결정을 내리고 청명절 천안문 사건을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로 덩샤오핑(鄧小平)에게서 부총리직을 포함한 모든 직책을 박탈했다. 이는 덩샤오핑 정치 생애에 있어 3차이자 마지막 실각이었다.

화궈펑은 이와 함께 당 제1부주석으로 선출돼 마오쩌둥(毛澤東)의 후계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화의 이 같은 부상은 자력이기보다는 4인방과 덩샤오핑 간 권력투쟁에 따른 반사이익이었다.

또한 이는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둔 마오의 정치적 균형 감각이 전혀 녹슬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마오는 이해 9월9일 사망했다).

1979년 = 국제올림픽 위원회(IOC), 중국의 회원 가입 승인.

1938년 = 리쭝런(李宗仁)이 지휘하는 국부군이 일본 침략군과 이해 3월22일부터 산둥(山東)성 타이얼좡(台爾庄)에서 벌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로 쉬저우(徐州)를 탈취하려던 일본군 정예병력 3만명이 섬멸되었다. 일본군과 벌인 사단급 이상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중국 장성은 매우 드물다. 리쭝런 외에 국부군에서는 쑨리런이, 공산군에서는 린뱌오가 이에 포함된다.

리쭝런은 1949년 1월 잇단 국공내전 패전 책임을 지고 장제스가 잠시 총통 직에서 물러났을 때 대리 총통을 맡았었다.

그는 공산군과 벌인 화평교섭에서 공산당의 요구를 수용하였으나 장제스 세력의 동의를 받지 못해 실패하였다.

이후 장제스와도 불화하여 1949년 12월 미국에 망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1965년 중국으로 귀국했으며 1969년 죽었다.

세계사 속의 오늘

나치 독일이 공직에 있는 유대인과 사회주의자, 민주주의자에 대한 숙청을 단행했다(1933).

미군기가 오키나와 근해에서 일본 최대전함 ‘야마토(大和)’를 격침했고(1945). 영국이 포클랜드 주변 200해리를 전쟁구역으로 선포(1982).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우리나라 최초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다( 1896). 1884년 갑신정변 실패로 미국에 망명한 서재필이 귀국, 주도하여 창간한 독립신문은 독립협회 기관지로 순 우리글과 영문판으로 제작되었다.

당시 대한제국 정부도 창간 과정에서 자금을 내놓는 등 지원하였다.

2021/04/0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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