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1/09/25 00:03



[今天歷史-7월25일] 청일전쟁 개전, 한국전 참전탑

1차 카라한 선언, 버마 루트 개통, 닉슨 독트린 발표, 자본론 1권 완성, 무솔리니 정권 붕괴, 세계 첫 시험관 아기 탄생, 영국-터키-필리핀 지상군 한국전 파병 결정, 미8군 사령부 도쿄서 서울로 이전 결정, 한-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맞교환 방식 반환 합의, 동인지 폐허 창간, 전국 기자연맹 결성

1894년 7월 25일(조선 고종 31년) 일본 군함이 조선 서해안의 풍도(豊島) 부근에서 중국 군함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청일전쟁이 개막됐다.

풍도는 경기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 딸린 섬으로 면적 1.843㎢, 해안선 길이 5.5㎞인 작은 섬 (2019년 86가구 124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이다.

위치는 동경 126°19′, 북위 37°8′이며 인천광역시 남서쪽 41㎞에 위치한 대부도(大阜島) 남서쪽 24㎞ 떨어져 있는 지점에 있다.

청일전쟁은 한반도의 패권적 지배권을 놓고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간에 60여년에 걸쳐 3차례 벌어진 전쟁의 첫 번째였다.

청일전쟁에서 해양세력인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한반도의 지정학적 역학관계는 일변하게 되었다.

청일전쟁 이전까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은 조공과 책봉 관계라는 전통적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바탕을 둔 중국, 즉 대륙세력이 압도적 우위를 견지하고 있었다.

청일전쟁을 계기로 해양세력의 우위로 역전되었고 1904~1905년에 벌어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또 다시 대륙세력 러시아에 승리함으로써 해양세력의 한반도에 대한 배타적 영향력이 확립되었다.

일본이 1945년 2차 대전에서 패배한 뒤의 한반도는소련이 대표하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미국이 38도선을 경계로 대치함으로써 힘의 균형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 균형은 1,000년 이상 단일국가로 지속돼 온 한반도를 기계적으로 분단한 것으로 기형적이었다.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중첩되어 남과 북에서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로써 북한은 동서 2면만이 바다이고 남쪽 한 면이 막힌 '불구의 반도'가 되어 대륙성이 강화되었다.

반면 남한은 대륙과의 연결이 끊어진 채 3면이 바다인 '불완전한 섬'이 되어 해양성이 짙어졌다.

1950년 소련의 지원과 중국의 동의를 받은 김일성의 남침은 이를 타파하기 위한 시도였다.

만일 이것이 성공했다면 한반도에 대한 대륙세력의 배타적 영향력이 복원됨으로써 1894년 이전 체제의 구조로 돌아갔을 것이다.

한편 미국이 대표한 해양세력 또한 6.25를 계기로 한반도에서 배타적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를 했으나 중국의 개입으로 역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은 1953년에 이르러 1945년에 엉겁결에 수립된 기형적 힘의 균형의 틀로 복귀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소모전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한민족에게는 비정상적인 이 분단 상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66년째인 2019년 현재까지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불안한 가운데서도 효과적으로 억제해왔다.

이렇게 된 데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모두 6.25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배타적 영향력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막대한 비용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설사 그러한 비용을 투입한다 하더라도 그 목표를 실현시킬 가능성이 희박하고 설사 성사시킨다 해도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였기 때문이다.

'불구의 반도'인 북과 '불완전한 섬'인 남은 이후 각각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에 포섭되는 가운데 상호 대척적인 발전모델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남북은 이질화하였고 그 성취 또한 크게 달라짐으로써 한반도의 기형성은 심화하였다.

1953년 휴전 이후 66년동안 남북 국력의 비대칭성( 2014년 기준 남북의 1인당 GDP는 22대 1) 과 주변 국제정세의 변화는 한반도의 이 기형적 균형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강요하고 있는 형국이다.

'21세기 판 천동설'을 고집하는

2021/07/25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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