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1/09/25 00:03



[今天歷史-7월26일] 李自成 피살, 포츠담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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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5년 7월 26일 중국 명나라 말 농민반란군의 지도자로 명나라를 멸망시킨 이자성(李自成)이 후베이(湖北)성 퉁산(通山)현 구궁산(九宮山 : 주궁산) 아래에서 현지의 지주(地主) 무장 세력의 공격을 받고 피살됐다. 향년 39세였다.

대순(大順)황제에 올랐던 이자성은 이 때 본대와 떨어져 있어 주위에 단지 28명의 친위병 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자성은 이들 친위대와 함께 맞서 싸우다 피살된 것이다. 베이징에 입성하여 대순 황제의 위에 오른 지 1년 2개월 뒤의 일이었다.

명말 농민반란의 지도자인 그는 1644년 3월 명의 주력부대가 청군을 막기 위해 산해관(山海關)으로 나가 있는 틈을 타 베이징을 공략, 점령하였다.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는 이자성 군대가 입성하자 자살했다. 이로써 명은 멸망했다.

이자성은 그러나 산해관을 지키다 명나라 멸망 소식을 듣고 청에 항복한 명나라 장수 오삼계(吳三桂)와 청병의 연합공격을 받고 이해 5월 베이징을 내주고 자신의 근거지로 퇴각해야 했다. 결국 허베이(河北), 산시(山西), 관중(關中)을 거쳐 후베이까지 쫓긴 끝에 어이 없게 피살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를 몰락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한 데는 오삼계와 한인 지주 무장세력 등 한인(漢人)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외세, 즉 당시 청나라 세력의 침략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한인들을 통합하지 못한 과오가 그의 몰락과 죽음을 재촉한 것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뒤 베이징에 입성하기 전 ‘이자성을 잊지 말자’라고 주위에 말했다고 한다.

역사에서 이자성의 경우처럼 군의 최고 지휘관이 소수의 병력으로 전선 지역 또는 적진 깊숙이 들어 갓다가 죽음을 당하거나 낭패의 경우에 처하여 역사의 흐름을 바뀌게 한 경우가 적지않게 발견된다.

중국 역사의 경우에는청나라 멸망 뒤 군벌 시대의 혼란기를 종식시키는 통일을 이룩한 중화민국 국민정부 최고 실권자 장제스가 1936년 12월 장쉐량 군의 공산군 토벌을 독려 하기 ㅣ해 시안으로 측근 만을 대동하고 갓다가 공산 군과 연계된 장쉐량과 양후청에게 구금되어 공산군과의 합작, 즉 2차 국공합작을 받아들인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는 결국 장제스의 국민당이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배하는 원인이 되엇다.

1870년 나폴레옹 3세는 보불

2021/07/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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