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2/09/26 22:34



[今歷단상-7월28일]단두대의 공평무사, 앙시앙레짐 종말 혁명의 종식

'회개한 샤일록' 스크루우지를 탄생시킨 '크리스마스 캐럴'의 작가이자 헨리 8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설 '거지가 된 왕자'를 산업혁명 시대 초기 흑역사 시대에 맞추어 쓴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작가 찰스 디킨스는 프랑스 대혁명을 두고 그의 소설 '두 도시의 이야기' 서문 첫머리에서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다'고 썼다.

'최고의 시절'은 인권선언과 ' 자유 평등 박애'가 슬로건이 상징한다.

최악의 시절은 단두대와 이를 매개로 한 공포정치와 촉매였던 가짜 뉴스가 대변한다.

프랑스 대혁명의 봉화는 1789년 7월14일 바스티유 감옥 파괴로 지펴졌다. 바스티유 감옥 파괴가 있었기에 인권선언과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류의 복음이 탄생됐다.

그러나 정치범이 가득 수용되어 있다는 혁명 선동가의 말과는 달리 바스티유 감옥 안에는 단지 잡범 몇 명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가짜뉴스'였다.

1989년 11월9일 장벽 붕괴의 도화선이 '가짜 뉴스'였던 것처럼 200년 3개월 25일 전 바스티유 감옥 파괴 역시 그 촉매제는 '가짜뉴스'였다.

200년 시차를 두고 앙시앙 레짐과 냉전 종식이라는 한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시작의 출발은 똑같이 분노와 희망이 뒤범벅이 된데서 비롯한 그러나 분명한 '가짜뉴스'가 점화시켰다.

1793년 1월20일 국왕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루이 16세는 앙시앙 레짐의 상징이었다.

루이 16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남편이 처형된지 9개월이 채 안된 1793년 10월16일 단두대의 이슬이 되었다.

왕은 반혁명죄로 왕비는 앙시앙 레짐 타락의 상징으로 단죄됐다.

그러나 국왕에게 모든 적폐와 삼부회 소집 뒤 정치적 선택을 극형죄로 물을 수는 없었다.

파리 시민이 프랑스의 패권 경쟁국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막내딸이 단두대로 끌려나올 때 환호했다.

하지만 "빵이 없으면 케이크"라는 왕비의 말은 '가짜뉴스'였고 그녀에 대한 극형 결정의 죄목인 어린 친아들과 근친상간은 명백한 조작된 허위였다.

루이 16세 처형 1년6개월8일 뒤, 그리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같은 운명을 당했던 9개월12일 뒤 프랑스 대혁명 성취의 상징이자 공포정치의 집행자라는 두 얼굴의 사나이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목이 단두대에서 앙시앙 레짐을 무너뜨리고 세운 공화국의 조종에 절규하는 가운데 잘렸다.

로베스피에르의 목이 환호하는 파리 시민에게 보이기 전 한달 조금 넘는 기간 그는 혁명의 동료 당통, 드물랭과 에베르 과거의 혁명 동지 다수를 단두대로 보내버렸다.

드믈랭과 에베르의 부인과 함께 혁명의 완수를 위해서라며.

이는 한나 아렌트가 1960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법정에 선 나치 인종말살 정책의 집행자 아이히만의 얼굴 모습과 그 재판 장면을 본 뒤 쓴 글에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아렌트는 자신이 저지른 인류에 대한 죄악과 매치되지 않는 초로의 평범한 독일 노인의 모습과 나치에 환호하고 그 인종 말살 범죄를 외면 묵인한 음악과 철학을 그 어떤 민족보다 사랑하고 즐겼고 심취했던 독일인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루이 16세의 목을 파리 군중에게 내보였던 단두대의 사형 집행자는 로베스피에르의 목 역시 파리 시민에게 보이면서 환호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이는 단두대의 공평무사다. 자유와 박애는 멀리 치워져 보이지 않았고 평등이 홀로 우뚝했다. 정치 스펙트럼의 양극단 정점의 목에 단두대의 시퍼런 칼날은 평등했던 것이다.

이로써 프랑스 대혁명은 최고와 최악을 공유한 채 정리됐다.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류동희 차이나워치 대표 2019년 7월28일

2022/07/2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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