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2/08/12 23:32



[今歷단상-8월5일] 미중 관계사 속 1949년과 2019년

1949년 미국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중국의 충격적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1950년 1월 세계 패권국가의 배턴을 세계 역사의 흐름에 불가피하게 수용하는 자세로 미국에 넘겨주려는 영국의 선례를 따라 그 구체적 조치를 취하였다.

하지만 스탈린의 소련은, 미국과 영국이 이를 통해 도모하려는 유럽 질서가 자신이 강력히 추진해온 서진하는 볼셰비즘에 대한 강력한 브레이크라는 점을 간파하고 이를 뒤집기 위해 소련이 유라시아 동쪽에서 얻은 제국주의적 이득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중소 우호협력 상호원조 조약이라는 1950년 2월14일 중소 동맹 체결과 1950년 6월25일 소련이 사주하고 공산 중국이 동의한 한국전은 미영 주도 세계질서 청사진의 근본틀에 타격을 가했다.

이것이 미국이 원래 도모한 프레임으로 다시 회복되는 데는 22년이 필요했다.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의 베이징 밀행이 계기가 됐다.

1949년에서 70년이 지난 2019년 미국은 1949년에 발원하여 1971년에 부활한 미중 관계사의 1949년 체제에 대한 근본적 수정을 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새로운 미중 관계 윤곽이 자리 잡힌다면 이는 수십 년 지속될 수도 있는 2019년 체제라고 명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류동희 차이나워치 대표 2019년 8월5일

2022/08/05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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